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8)

라파공동체2026.03.28 15:232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18)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몸소 보여주시고 살아내신 복음은 하나님 나라가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 구현되는 것임을 증거합니다. 영적인 삶은 세속적인 삶과는 구별되지만 세속적인 삶 속에서 구현되어야 합니다. 주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일의 거룩은 반드시 평일의 일상 속에서 증거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삶과 세속의 삶은 그러므로 분열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일과 평일도 분열되지 않습니다. 영적인 삶과 세속의 삶, 주일과 평일은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의 삶 속에서 분열되지 않고 통일되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 삶을 그리스도인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내야 합니다. 신앙을 ‘삶의 문제’로 정립한 밝은누리 공동체의 「살림학 얼과 길」(철호, 밝은 봄, 2024년)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밝혀준 소중한 성취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하늘 땅 사람 더불어 사는 살림길 평화살이”인데 이 부제 속에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의 모임인 교회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끝없이 해석되고 탐구되어야 합니다. 현대라는 시간, 한국이라는 공간의 맥락 속에서 그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목표는 예수가 전해준 갈릴리 복음과 초대 교회가 보여주었던 신앙, 생활 양식을 회복하여 현재에 복원하는데 있습니다. 「살림학 얼과 길」은 철학의 틀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을 조명한 책인데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한국이라는 삶의 자리에서 탐구한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의 사상, 그리고 민중신학자인 안병무의 신학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킨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영모와 함석헌을 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사상가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견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들을 사상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신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동양의 사상과 철학으로 기독교 복음의 진수와 본질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때론 불경을 통해 기독교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종교 간의 대화와 관용을 주장한 기독교 에큐메니컬 운동의 선구자들이기도 했습니다. 「살림학 얼과 길」이 특별한 가치를 갖는 것은 그것이 “33년간 강원도 홍천과 서울 도봉동 인수마을, 경기도 군포와 양평, 부산 경남 등 농촌과 도시에서 생명살림터인 마을을 일구고, 생명을 살리며, 평화 일구는 삶을 살아온 살림꾼, 길벗들의 삶을 토대”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책은 “생명 살림과 평화를 증언하고 염원하는 1,000일 순례길에서 만난 지구 곳곳의 살림길벗들이 살아온 삶의 지혜”를 담아낸 살아 있는 증언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33년 동안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밝은누리 공동체의 삶의 지혜가 ‘살림 사상’으로 정립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노자, 장자, 주역 등의 동양 사상과 한국의 근현대를 밝힌 동학사상, 그리고 서양의 여러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 - 메를로 퐁티, 화이트 헤드, 비트겐슈타인, 알튀세르, 그람시, 들뢰즈 - 의 사상과 철학이 ‘살림 사상’으로 수렴되어 정립되고 있습니다. “살림학”은 이렇게 정의됩니다. “죽임문명에서 살림문명으로 전환하는 운동이다. 반생명문화에 깊게 물든 사고방식과 생활 양식을 거슬러, 생명살림과 평화 일구는 생활 양식과 문화를 실천한다. 살림길 평화살이하는 삶을 설명 해석하고, 새 삶에 적합한 관념들을 생성하고, 다양한 분과 학문과 관념의 성과들을 이으며 더 나은 삶을 추동한다.” 살림학은 한마디로 살리자는 학문입니다. 인간은 생(生)을 명(命)받은 존재이므로 주어진 생명을 아름답게 노래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인 바, 인간의 인간다움은 생명을 살리는 ‘살림’을 어떻게 이루어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 살림이든 국가 살림이든 살리는 일, 곧 살림살이를 잘 해내야 하는데 그 목표는 살리는데와 평화를 일구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 있는 곳에 평화 있고, 평화 있는 곳에 생명 있는데 이 생명과 평화를 일구며 살아가는 것이 참사람의 도리이며 국가와 사회, 교회가 이루어야할 목표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얼 빠진” 상태에서 벗어나 살림의 주체로 스스로를 세워나가야 하며, 이들 살림 주체들이 연대함으로 살림과 평화의 생태계를 “마을”을 중심으로 일구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고 자고 놀고 일하는 일상생활,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교육, 농생활과 직장생활 등 삶의 모든 현장에서 살림 길 평화살이를 구현하는 삶의 양식을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살림학 얼과 길」에는 기독교적 용어가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우리가 쓰는 언어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과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통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유교, 도교, 불교의 언어로 기독교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 책은 기독교인을 포함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살리는 일과 평화를 일구는 일’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중심 주제여야 함을 역설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의 삶을 통해 친히 증거하신 일도 ‘살리는 일과 평화를 일구는 일’이었고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신학적으로 풀어낸 이는 안병무였습니다. 그는 개신교 최초의 독신여성 수도회인 <한국디아코니아 자매회>를 설립한 실천적 신학자였는데 함석헌의 ‘씨알’을 역사와 신앙의 주체로서의 ‘민중’으로 보고 독재정권의 억압이 만연하던 1970-80년대, 민중의 자유와 해방을 하나님의 뜻, 성서의 뜻으로 해석한 <민중신학>을 정초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역이 억압받던 땅 ‘이방의 갈릴리’(마 4:15절)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음에 주목하고 예수님의 삶을 민중운동의 관점에서 조명합니다. 그의 민중신학은 1990년 발표한 「갈릴래아의 예수」(한국신학연구소, 1990년, 2020년)에서 완성됩니다. 함석헌의 ‘씨알 사상’이 안병무의 <민중신학>으로 정립되었듯이 밝은 누리 공동체가 정립하고 있는 ‘살림 사상’도 <살림신학>으로 정립되기를 소망합니다. 제 마음 속에 <살림학으로 읽는 사복음서 해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살림신학>은 <갈릴리 신학>의 또 다른 얼굴에 다름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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