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21)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21)
한국 기독교의 극우화 현상을 보면서 과연 아나뱁티스트들 중에서도 극우화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마다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 그런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나뱁티즘의 관점에 굳게 서 있다면 그럴 리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당신의 삶을 통해,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복음의 핵심 요체는 ‘힘을 추구하지 않음’에 있습니다. ‘힘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체포당하시는 순간에 베드로가 칼을 빼어 저항할 때 주님은 수많은 천사가 당신을 도울 수 있지만 그 힘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순순히 체포당하셨습니다. 기독교와 교회가,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을 추구하는 순간 복음은 이제 더이상 복음이 아니게 됩니다. 금력, 재력, 권력, 무력을 추구하는 순간 기독교 역시 더이상 기독교가 아니게 됩니다. 기독교와 교회,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연약함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낮아짐을 지향해야 합니다. 세상의 “작은 소자”가 되고 그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높아지려 하고, 더 커지려고 하고, 더 힘이 세지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취할 바가 아닙니다. 아나뱁티즘(재세례) 신앙의 비전, 혹은 진수로 구별되는 철저한 제자도, 공동체, 평화의 사상과 개념 밑에 깔려 있는 더 본질적인 사상은 무위(無爲), 무력(無力)의 사상입니다. ‘우리는 무력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라는 실존적 고백으로부터 참된 제자도, 공동체, 평화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나의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출 14:13-14)는 말씀이 실현되는 순간에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힘을 소유하고 소유한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힘이 사용되는 통로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은 오직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만 발휘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작동 원리이며 운영 원리입니다. 아나뱁티즘의 “분리주의”가 의미하는 함의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힘’으로부터, ‘권력’으로부터 멀리 있겠다는 것입니다. ‘힘과 권력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인간 본성의 문제, 죄의 문제의 중심에는 ‘힘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 국제관계 문제의 중심에도 이것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 복음의 답은 ‘성령으로 거듭나’, ‘힘이 아니라 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라‘입니다.
기독교 극우 시위대를 보면서 제 머리 속에 떠오른 의문 중의 하나가 있었습니다. 시위대가 흔들고 있는 깃발 중에 이스라엘 국가 깃발이 휘날리는 것이었습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것까지는 이해할만 했는데 다윗의 별이 그려진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답을 「기독교 시온주의의 역사」(도널드 M루이스저, 홍수연 역, 새물결플러스, 2024년)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을 갖게 되고, 신앙의 눈으로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제 마음속에 남아 있던 궁금증 중 하나는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 소견으로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은 인류 3,000년 역사를 통틀어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사건이었습니다. 사울과 다윗에 의해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진 것은 BC 1,000년경 이었습니다. 솔로몬 시대를 지나면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누어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이 BC 722년 앗시리아에, 남유다는 BC 586년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됩니다. 이스라엘 왕국이 존속했던 것은 BC 1,000년부터 BC 586년까지 고작 400여년간 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를 잃고 전세계를 떠돌다가 무려 2,500여년이 지나, 1948년에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되찾은 것입니다. 신화도 이런 신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BC 586년은 한국으로 치자면 고조선 시대에 해당하는데 고조선이 멸망해 사라진 후 2,500년만에 한민족이 중국 땅에 나타나 이 땅이 우리 조상들의 땅이었으니 이제 우리가 우리 조상의 나라 고조선을 여기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하나님이 하셨다고밖에는 설명할 길 없는 현대판 출애굽의 기적이라고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 시온주의”라는 신앙적, 신학적 움직임이 그 사건의 결정적 배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시온주의가 현대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 이르러 더 힘을 발휘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와 연합된 한국 극우 그룹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시위에 참가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시온주의”는 “중동 팔레스타인 영토가 성서가 말하는 옛 유대인 국가의 땅이며, 그 땅의 점유는 유대인들에게 신적으로 주어진 권리라는 믿음을 가진 기독교 운동”을 말합니다. ‘기독교 시온주의’는 “유대인들이 결국 팔레스타인 영토로 회귀하여야 한다는 믿음인 “회복주의”(Restorationism)에서 출발한 신념으로서, 하나님이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여 그 땅과 민족을 회복시키시는 것을 종말의 섭리적 사건으로 간주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정당화하는 신학이자 이데올로기”라고 도널드 루이스는 정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