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24)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24)



 이제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작년 한국 아나뱁티즘 창립 30주년 행사에 참석해 깊은 감동을 느낀 후, 한국에서 아나뱁티스트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 스스로를 아나뱁티스트로 고백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1525년 1월 21일 펠릭스 만쯔의 집에서 일단의 신자들이 서로에게 침례를 베풀면서 ‘재침례교도’가 된 것과 같은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예수께로 가는 길은 쉬웠습니다. 그러나 아나뱁티스트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나뱁티즘 창설자들과 같은 깊은 고뇌와 성찰, 결단이 요구되었습니다. 예수께로 가는 길이 쉬웠던 것은 내가 간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게 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그분을 부른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먼저 나를 불러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은 초기 시기에 아나뱁티즘에 대해서 깊이 알지도 못해지만 그것이 내게 필요로 되지도 않았습니다. 처음 얻은 구원의 황홀감만으로, 복음이 가져다주는 신선함과 풍요함으로, 교회 생활을 습득해가는 즐거움으로 나의 영적, 지적 세계, 일상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던 첫 5년간 나는 오직 극동방송만 들었습니다. 극동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당시 복음주의 4인방이라 불렸던 이동원, 옥한흠, 하용조, 홍정길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 영혼은 풍요로움으로 차고도 넘쳤습니다. 좋은 교회를 만나 양육받고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장, 성숙하는 과정은 꿈처럼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꿈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개인적 차원에서 ‘중독치유선교’ 사역을 시작합니다. 부르심에 따라 신학 공부도 하게 되고, 신대원을 졸업한 다음엔 관습에 따라 안수받고 목사가 됩니다.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저는 풍요로운 영적 모판이 되었던 모교회를 떠나 홀로 세상과 기독교계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다운 교회, 그리스도인 다운 그리스도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뭔가가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무엇이, 왜, 언제, 어떻게 잘못된 건지 고민하고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산 교회와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서 예수의 흔적과 향기를 발견하기란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너는 온전하냐, 제대로 된 신자냐?’ 하는 물음이 끝없이 제 내면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나만이라도 잘하자, 나만이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자’고 다짐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부끄럽지 않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저는 침례 교회에서 자랐고, 침례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침례 신학의 가장 중요한 골격은 “신자의 침례”, “신자의 교회”입니다. 곧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그리스도,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며 고백한 사람을 “신자”라 하고 그 ”신자“가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공적으로 고백함으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침례” 혹은 “침례 의식”이라 하는데 저는 이 “침례”, “침례 의식”이 온전한 의미를 가지고 집행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신앙 고백이 확실치 않은 사람에게도 침례를 주거나, 침례를 주면 이 사람에게 신앙이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침례를 주는 경우도 많았고, 더 문제인 것은 침례를 줌으로 그 사람을 자기 교회의 교인 삼으려는 불순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시행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침례 받은 사람들을 교인이라고 부르며 교회를 이루어 가니 그 교회가 복음의 순수성과 온전성을 온전히 유지할 리가 만무하였습니다. 침례 신학의 주요 교리 중의 하나는 우리말로 “거듭남”(Born again)으로 표기되는 “중생(重生)”입니다. 중생, 혹은 거듭남은 기독교의 구원, 그리스도가 가져다 주는 구원 사건의 핵심을 설명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구원’이란 예수를 그리스도와 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완전히 변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 곧 “거듭남”에 대한 다른 표현은 아마도 “개과천선(改過遷善)”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전존재가 하나님을 향하여 죄인됨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죄 가운데 살아온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 착하고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에게 합당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의 인격이 변하고 삶의 가치와 지향이 변하며, 삶의 양식이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체험을 하고, 성령 세례를 받아 믿음을 갖게 된 사람은 많으나 근원적이고 심원한 삶의 변화가 수반된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삶의 양식의 변화가 일요일에 예배에 참가하는 수준에 그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따르는 것 사이에도 큰 불일치가 있었습니다. 믿는 다고 하면서도 따르지 않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믿음의 고백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과 믿음의 고백은 분명하지만 삶의 전변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과연 “신자”라고 불러야 하는지가 문제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신자라 치고 교회가 구성되었으니 교회가 경건의 모양은 가졌으나 능력은 없는, 세상과 크게 구별되지 않는 종교 단체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전하는 말씀도 지나치게 교리 중심적이어서 “이신칭의” 교리를 중심으로하는 설교는 지나칠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해서 신앙이 ‘구원 얻는 믿음’에 치중하는 경향이 농후했고, ‘행함이 있는 믿음’은 가볍게 다루어졌습니다. 믿음과 실천 사이에도 깊은 간극이 존재해서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세상 사람보다 탁월한 도덕적, 윤리적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개인 구원이 지나치게 편중되어 강조되고 사회적 실천, 사회 구원은 방기되거나 저평가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주류 교회는 국가 기독교화의 시도에 매달렸고 불의한 정권과 타협하고 야합함으로 복음의 급진성과 전복성을 스스로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정치 권력이 제시하는 경제개발 논리와 반공주의 이념을 충실히 따름으로 반(半) 복음을 넘어 반(反) 복음의 양상을 보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에 대한 기독교의 선한 영향력은 급속히 상실되고 마침내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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