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간증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왜 쇼핑중독에 빠졌나&왜 자살사고에 빠졌나



-첫 시작은 21살 때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를 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또래보다 아주 조금 더 많이 월급을 받았는데 절반정도를 쇼핑에 썼다. 화장품, 옷 같은 꾸밈을 위한 물건들을 샀다. 점점 소비규모가 커지고 나중에는 월급전부를 쇼핑에 썼다. 나는 왜 쇼핑에 빠지게 됐을까. 쇼핑하면서, 결제하면서, 매장직원들이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좋았다. 그 과정에서 전능감을 느꼈다. 쇼핑하는 행위가 나를 내가 위하는 행위라고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위안하는 방법이 쇼핑이었던 것 같다. 내가 중독자이구나를 느끼게 된 것은 감정처리 수단으로 쇼핑을 이용하고 쇼핑이 나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고나서였다. 우울하고 불안하면 쇼핑을 했다. 외로우면 쇼핑을 했다. 채워질 수 없는 허기를 느끼면 쇼핑을 했다. 비참하고 미친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쇼핑이 내게 충만감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았기에 절망스러웠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나마 이것이 나를 잠깐이나마 채워주고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돈 전부를 쇼핑에 쓰고 사용할 현금이 부족하니까 핸드폰소액결제로 물건을 사거나 현금화해서 생활비를 충당했다. 처음 연체가 시작됐을때는 핸드폰요금이었다. 400만원정도 연체를 시키고 정지될거 같으니까 엄마한테 털어놨다. 엄마에게 같이 돈관리하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중 휴학을 하고 일을 시작했다. 남동생과 사건 때문에 일주일만에 집을 구해 자취를 시작하게 되고 직장을 다니니 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 엄마 몰래 신용카드 두장을 만들었다. 2년도 안되어 카드값 감당이 안되어 다시 엄마에게 털어놓고 카드대금은 대환대출로 분할상환하는 것으로 처리했다. 몇 년에 걸쳐서 500만원 갚는 기간동안 월급 들어오는 날은 엄마랑 무슨 일이 있어도 공과금 먼저 처리하고 용돈 받아서 썼다. 카드대금 다 갚아갈 즈음 다시 내 멋대로 쇼핑을 하고 싶었다. 엄마랑 싸우고 사이가 안좋았을 때를 핑계 삼아 혼자서 돈관리 하겠다고 막무가내로 연락을 끊었다. 되돌아보면 엄마에게 나혼자 할 수 있다고, 고칠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고, 이번에는 다르다고, 얘기한게 21살때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었다. 라파에 들어오기 직전 1년 전에는 지금까지 돌려막기하고 매달 연체되던 핸드폰요금, 카드빚 등을 한번에 정리하겠다는 생각에 대출을 받았다. 필요한 금액보다 몇백만원이나 더 많은 금액으로 대출을 받고 신용카드 대금을 갚고 휴대폰요금을 갚았다. 이제 다시 제대로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실 이번에도 본 마음은 대출을 받아서 연체를 정리하는 것보다 한번만 더 크게 쇼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복원된 카드 한도로 쇼핑을 다시했고 남은 대출금으로 명품 쇼핑을 했다. 이전에는 100만원 넘어가는 물건은 사본적이 없는데 한번 사보니까 계속 사고 싶었다. 사실 내가 감당이 안되는 선을 넘었다는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뭐, 라는 정말 말그대로 미친 생각으로 계속 대출을 받고, 빌릴 수 있는 모든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렸다. 그렇게 2년동안 5천의 빚이 생겼다.



 



-되돌아보면 십대때 나는 조르지도 않고 메이커를 따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메이커에 목매는 친구들을 철없다 생각하며 그러지 않는 나를 의롭게 생각하며 자기위안하며 살았다. 또 나도 갖고 싶었지만 조르지 않았고 갖고 싶던 마음이 참아졌던 것 같다. 참아진게 아니라 눌러왔다는 건 라파에 와서 알게된거지만. 십대때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나서 내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데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봤다.



-아빠는 폭력적이고 자기본위적인 사람이었다. 폭력적인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누군지도 모르는 낳아준 엄마는 따로 있었고 길러주신 엄마인 할머니 밑에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표를 갖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젊을 때 극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고 엄마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식들을 사랑하긴 하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주는 아빠였다. 그 방식이 자식들에게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본인의 기분에 따라 똑같은 상황에도 어떤 때는 혼내고 어떤 때는 넘어가주곤했다. 혼란스럽고 예측하기 힘든 아빠였고 폭력적이고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이때 손이 야무지지 않아 물병 뚜껑을 실수로 떨어트려도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치던 아빠였다. 나는 꾀를 잘부리고 어릴 때부터 알아서 척척 잘하던 아이였다. 그렇지만 남동생은 성격이 유약했고 정에 목말라했고 아빠가 원하는만큼 똑부러지게 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식 중 유일한 남자아이라고 셋 중에 더 폭력적으로 대한 것 같다. 남동생은 어릴 때 말을 더듬었던 적이 있는데 성경을 제대로 못읽고 더듬거린다고 주먹이 남동생 머리로 날아갔던 기억이 있다. 머리를 맞은 남동생은 머리에 혹이 생기고 얼굴이 노래졌다. 엄마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고 그저 팔로만 막았던 기억이 난다. 적극적으로 온몸을 날려 말리지 않던 엄마가 생각난다. 내가 크고 나서 엄마가 해준 얘기로는 그때는 엄마도 자아가 약해서 아빠가 두려웠다고 얘기해준 기억이 난다. 내가 8-9살 즈음 사업이 어려워지고 가정경제가 어려워지며 아빠의 음주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술먹는 날이 많아지고 음주운전하는 일도 많아졌다. 사고를 내서 수감된적도 두 번 있었다. 사업은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그런 상태로 6-7년 지낸 것 같다. 나중에 가서는 아빠는 대놓고 일을 안했고 항상 술을 먹고 엄마와 싸우던 모습이 기억난다. 엄마는 갑작스럽게 집안경제를 책임져야했다. 내 눈에 엄마는 약하고 우리집을 책임질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내가 그 역할을 해야할 것 같았다. 중2때 아빠에 대한 기대 - 가장역할 하기를, 아빠가 바뀌기를,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가족들에게 아픔을 준 것을 사과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아빠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아빠라고 인정하는 것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가 가장역할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때부터 엄마를 책임지고 집안을 책임지는게 나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나의 안위보다 엄마의 기분, 얼굴표정, 컨디션이 더 중요했다. 집안에 무슨 일은 없는지, 집은 잘 정돈되어 있는지, 동생들은 말을 잘 듣고 있는지가 내 관심사였고 내 온신경이 쏠리는 곳이었다. 엄마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더 스트레스 받아했고 나중에는 엄마와 감정의 얽힘이 극심한 것을 알아채고 이대로는 내가 죽겠구나 느꼈다. 그때쯔음 남동생이 의가사제대하고 사건이 일어난다. 동생들은 사춘기를 격하게 겪고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엄마의 배우자 역할을 해야하고 가장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동생들을 동일한 형제의 입장으로 보지 못하고 훈육하고 교정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그중 남동생과 마찰이 컸다. 어릴때부터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똑부러지지 않는 남동생, 항상 아빠에게 혼나던 남동생을 나는 어릴때부터 탐탁지 않아했고 경멸하며 잔인하게 무시하며 대했다.



 



 



 



 



 



 



 



-나와 남동생 중에 아빠에게 맞는 일은 남동생이 더 많았다. 훈육이 아니라 무차별적인 폭력이었다. 아빠가 집을 나갔을때 우리 세남매는 모두 10대였다. 아빠에게 당한 폭력과 억눌려있던 분노의 파장이 남동생이 가장 컸다. 학교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쳤고 학교가지 않겠다며 엄마에게 욕하고 집안 물건을 부시며 폭력적으로 대했다. 어렸을 때부터도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내가 남동생과 마찰이 있고 남동생을 경멸한 이유는 오직 엄마를 힘들게하는 대상이라서였다. 남동생이 의가사제대하고 불안정한 심리상태로 집에 왔을 때 그 사건이 일어난다. 남동생은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었고 나는 항상 그랬듯 밖에서 지적하고 잔소리했다. 그때 남동생은 모멸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남동생이 화장실에서 나와 식칼로 위협하는 일이 있었다. 내가 경멸하고 무시하던 남동생에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목숨을 구걸하는 말을 했고 어찌저찌 상황을 넘기고 일주일도 안되어 집을 구해 자취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자살사고와 무기력이 시작되었다. 이번 구정에 남동생과 다시 재회하기까지 8년동안 나는 내 자살충동의 이유를 남동생에게서 찾았다. 실제로 남동생사건 직후부터 트라우마 증상도 경험했고 약을 먹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했기에 나는 내 자살의 문제를 남동생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이 드는 것은 남동생과 사건이 촉발사건은 될 수 있어도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경멸하고 무시하던 사람에게 내 목숨을 구걸한게 수치스러웠고 평생 남동생을 피해서 살아야한다는 것이 굴종감과 수치심이 컸다. 그리고 언제든 이런 목숨이 위협받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존재구나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다면 내게는 고행처럼 느껴지는 인생을 굳이 열심히 살아야할까 하는 생각으로 다달았고. 인생의 허무와 삶의 소망없음이 나를 지배했다.



-올 2월 구정에 엄마로부터 남동생이 통화하기를 원하는데 엄마는 네 마음이 괜찮은게 가장 중요하다며, 거절해도 좋고 네 마음 편한대로 하라는 연락이었다. 라파에 와서 알게 된 것은 사실 남동생이 가해자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해한게 먼저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어쩌면 내가 가해한게 더 클수 있겠다라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그래도 자매는 아빠의 총애를 받고 자란 것 같은데 남동생은 그러지 못한 것 같고 어릴때부터 약자였던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맞았다. 기도하면서 잊고 있던 기억도 떠올랐다. 남동생이 아장아장 걷던 때 말도 안되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남동생을 때렸다는 아빠 얘기를 엄마가 해준 적이 있었다. 겪어야하지 말아야할 일을 어린 나이에 겪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무의식에 깊은 상처와 분노가 새겨진다는 것을 라파에 와서 알게 되었고 남동생의 상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내가 상처줬던 것에 대해 그냥 경멸하고 잔인하게 대했구나- 정도로만 막연하게 생각하는 정도였었다. 그러나 남동생의 기척, 말투, 표정, 체취, 성향, 취향, 어쩌다 살갛이 닿는 것, 그의 친구들, 그가 거기 있음을, 남동생의 전인격적인 모든 것을 경멸해왔던 내 모습이 기억났다. 나는 남동생에 비해 사랑도 많이 받았고 세자녀 중 아빠가 제일 사랑하는 자식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남동생에게 너는 왜 나처럼 하지 못하냐, 너 때문에 아빠가 화를 내는거다, 너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안좋아진다, 하며 경멸하던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커서 폭력을 당했지 남동생처럼 내가 기억 못하던 시절에 아빠에게 폭력 당한 적도 없었다.



남동생과 대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아빠랑은 이미 너무 멀어진 느낌인데 누나랑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얘기. 남동생이 먼저 미안하다는 말도 했던 것 같다. 옛날에는 누나에게 분노나 억울함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어찌됐던 그때 그렇게 행동한 것은 자기잘못이라는 얘기, 지금와서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는 얘기도 했다. 통화를 끝내고나서 그래도 좀 성숙해지고 남동생도 혼자서 힘든 시간을 보내며 생각정리를 했구나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서야, 남동생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줄때에서야 나도 남동생에게 내가 이제껏 잔인하게 대하고 경멸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남동생과의 일은 절대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 때문에 죽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 일어났다고는 보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남동생이 먼저 내게 다가와준 것, 내가 남동생을 통화로 대면할 수 있었던 것, 모두가 사람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다니는 병원교수도, 엄마가 다니는 병원의사도 주변의 모두가 오랜시간이 흘렀는데,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일어났네요, 사람의 힘으로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일어났네요, 하나님이 하셨네요, 라는 말들을 했다. 남동생과의 전화통화 이후 감정이 차분해지면서 내 안에서도 정리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던 나인데 이 일은 사람의 힘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렇다고 사단이 한 일도 아니었다. 아 하나님이 하신 일이구나. 그런데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신걸까. 아 날 사랑해서 이런 일을 하신거구나. 아주 먼 옛날부터 나를 지켜보고 계셨던 분이 하나님이라는 찬양 속 가사가 사실이었구나. 라는 깨달음이 오자 감격과 기쁨이 샘솟았다. 동시에 내 자살충동도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남동생 사건이 내 자살충동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남동생과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일이 풀리기 시작했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형용할 수 없는 잔여감정이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찌꺼기 같은 감정이 남아있는데 분명 구체적으로 ‘죽고 싶다’라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기분 나쁘고 꺼림칙한 어떤 감정이 잔존하고 있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얼마안가 우울과 자괴에 빠졌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걸 알게 됐는데, 남동생과의 관계가 생각지도 못하게 풀리고 있는데, 왜 나는 여전히 우울과 소망없음에 빠져있나 생각했다. 이런 내가 견딜 수 없게 싫었다. 그러던 중 아빠와 전화통화 하는 일이 있었다.



 



-이번달 용돈이 부족할 것 같아서 아빠에게 용돈을 보내달라고 했다. 많은 돈 아니고 5만원만 보내달라고 했다. 아빠는 침신대에 입학하게 됐음을 얘기하며 신입생 오티에 참여하느라 정신없다는 말을 죽 늘어놨다. 그리고 작년 9월부터 입학준비를 하느라 일을 못해서 줄 돈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학교에 가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얘기, 학교 다니면 전공교재나 따로 드는 돈이 많은데 어떻게 할것이냐는 내 말에 그것도 하나님이 인도하실거라는 확고한 아빠의 말, 신입생오티에 갔는데 벌써부터 내 연주를 알아보고 세션으로 같이 하자고 하는 학생들, 기존에 감당하고 있는 찬양사역들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이 된다는 얘기들, 자신의 포부를 장황하게 몇분동안 일방적으로 늘어놓고 있는 아빠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부정적인 얘기나 화를 낼 수 없었다. 그저 수용하고 받아주고 인정하고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그래그래, 맞아, 좋았겠네, 맞아, 잘할거야’하는 공허한 말들. 허공에 흩날리듯 가벼운 말들이 내 입에서 나왔다. 아빠는 용돈을 부쳐주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전화를 끊고 나는 공허와 허기가 물밀 듯이 몰려왔다. 1층에 내려가서 빵에 잼을 발라서 집어넣었다. 마구마구 쑤셔 넣었지만 허무함은 가시지 않았다.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얘기를 하며 내 감정을 환기시켜보려 했지만 도움이 안됐다. 그때 든 생각은 밖에 있었다면 나 분명 쇼핑하고 있었겠지, 그게 나를 채워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어찌할 수 없는, 견딜 수 없어 미칠 것 같은 허기를 잠깐이라도 달래기 위해 절망을 느끼면서 쇼핑하고 있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은 아무것으로도 채울 수 없구나. 절망스러웠고 그때 마주볼 수 있었다. 내 안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핵심감정이 공허함이라는 것을. 나는 이 땅위에 두 발 붙이고 서 있는데 내 아빠라는 사람은 풍선위에 앉아서 두둥실 떠올라 저 멀리 보이지도 않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구나. 저 멀리 풍선위에 있는 사람이 내 아빠구나. 저 사람에게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영영 얻을 수 없겠구나. 아 허무하고 아득함이 무저갱 같구나. 인생은 허무하고 고통으로 가득차있구나. 나는 껍데기만 남았구나.



 



-상담하면서 알게된 것은. 내가 아빠에게도 동반의존되어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도 감정의 연료가 부족한데, 내 감정의 탱크도 비어있는데 엄마에게는 가장역할하려고 하면서 내게 없는 걸 퍼주려고 하고 아빠에게는 그가 바라는 수용과 인정, 칭찬을 퍼줬다. 아빠에게 한번도 가장역할하지 않는 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중2때 한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자기기만과 합리화, 궤변으로 회피하는 아빠를 보면서 내 안에 어떤 끈이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더이상 아무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있었다. 또 사실 남동생사건 전부터, 공허와 껍데기만 남은 기분을 많이 느꼈는데 20살 전까지는 억지로 억지로 내자신을 끌고 당기고 하면서, 상처 받은 어린 나는 무시하고 과대자기의 거짓자아인 내가, 가장역할하기로 자청한 내가 나를 어거지로 끌고오면서 여기까지 왔던 것 같다. 그러면서 20살부터 몸 이곳저곳이 이유를 알 수 없게 아프고 면역력수치도 바닥이라는 말을 들었다. 자가면역질환을 진단받고 입원도 하고 대학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몸이 많이 아팠다. 그즈음 엄마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ㅇㅇ이 네가 너로 살지 못해서, 네가 원하는 걸 하지 못해서 이렇게 몸이 아픈 것 같다, 라는 말을 했다. 그때 나는 나는 나로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데 왜 나로 못산다는건지 엄마말이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그치만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알 것 같다.



 



-라파에 와서 내 안에 허위와 거짓, 왜곡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해자였음을, 내 자살충동의 이유가 남동생사건 때문이 아니었음을, 쇼핑중독과 자살충동의 문제는 원인이 같다는 것을,, 또 라파에 오게된 것, 절대악인이었던 남동생에 대한 해석이 바뀌게 된 것, 또 때마침 일어난 남동생과의 재회, 화해,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을 깨달음, 또 적절한 시기에 일어난 아빠와의 사건, 그리고 간증을 준비하는 과정동안 일어난 깨달음, 라파에 오고 난 후 6개월의 걸음동안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맞는 때에,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내 주변에 동역자들을 붙이셔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신뢰가 생겼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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