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의 감동적인 일화

라파공동체2026.03.28 15:233

  대한민국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오고 140년이 됐습니다. 한국 교회사에 정말 감동적인 일화가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어제 주일 예배 때 말씀을 나눌 때 로마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에 대해 선민의식 때문에 율법에 매여 기독교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됐다는 말씀을 듣고 혹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올립니다.



  조덕삼은 1867 전북 김제의 부유한 지주 가문에서 태어났고 이자익은 1882 경남 남해 탐정리 섬에서 출생 6살 때 고아가 됩니다(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읨). 그래서 먹고살기 위해서 떠돌다 곡창지대 김제에 와서 조덕삼의 집에서 마부()로 일을 하게 되죠.



  미국에서 의과를 전공한 루이스 테이트 선교사(호남 선교의 선구자)님이 여동생 매티 선교사(평생 독신으로 삶)와 함께 1892113일 전주에 도착합니다. 매티 선교사는 죽을 때까지 조선 반도에서 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 천국에 갑니다.



  1904년 테이트 선교사가 마방(말이 조금 쉴 수 있도록 하는 곳, 말을 타고 전도하러 다니다 이 마방에 잠깐 들름)에 들렀을 때 조덕삼, 이자익이 테이트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돼요. 그리고 조덕삼이 예배 처소로 준 그의 집 사랑채는 금산교회가 됩니다. 우리나라에 잘 보존된 유일한 교회 건물인 것 같아요. 건물이 ㄱ자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한쪽은 남자들이, 다른 한쪽은 여자들이 모이고 설교자가 가운데서 설교하는 그런 구조였어요.



  시간이 흘러 교인이 100여 명이 모이게 되었고 1907금산교회는 1명의 장로를 선출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조덕삼과 이자익 두 사람이 장로 후보로 추천됩니다. 투표 결과 조덕삼 보다 15살 어리고 조덕삼 집에서 종살이하던 이자익이 선출되죠. 누가 생각해도 모든 것을 고려한다 해도 조덕삼이 장로로 선출될 줄 알았는데 종살이하던 이자익이 선출된 거죠. 순간 교회 안의 분위기가 묘해졌는데(테이트 선교사를 비롯한 교회 사람들이 말은 못 하면서 조덕삼의 눈치를 살피게 됐겠죠) 조덕삼이 선교사님에게 발언권을 얻어서 이렇게 말해요.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장로가 세워지기 전에 교회 일을 헌신적으로 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는 저보다 신앙의 열기(열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교회를 섬기는 열정 등 모든 부분에서)가 대단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더욱 교회를 잘 섬기겠습니다.”



  오늘날도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는 신분사회였어요. 상전이 있고 종이 있는 신분사회요. 그런데 내 집에서 종살이하던 사람이 교회의 장로님이 됩니다. 그러면 교인인 나는 그 장로님의 영적 권위에 순복하고 교회를 협력해서 세워가야 하는 겁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이기적인 자아를 이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조덕삼은 15살 어린 이자익 장로를 잘 섬겼고 이자익이 선교사님 추천으로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학비를 전액 지원했어요. 그리고 조덕삼이 장로가 된 후에 교인들과 협의하며 주도적으로 자기 집 종 출신인 이자익을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초빙하여 이전의 종과 주인이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장로로 협력하며 주님과 교회를 섬겼어요. 자기 집 종 출신인 목사님이지만, 그 권위 아래 순종하면서 목사님, 목사님 하며 교인들과 함께 협력하며 평생 교회를 아름답게 섬겼어요.



  조덕삼 장로님의 이 일화는 한국 교회사에 한 줄기 빛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이천 년 역사에도 이런 아름다운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세계의 기독교인에게도 조덕삼 장로의 일화는 빛이 되고 메시지가 되고 있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조덕삼 장로가 자기 집 종 출신인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됐을 때, ~~~, 정말 어이가 없네. 나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이렇게 했다면 그 교회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가 교회가 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러면 조덕삼의 신앙은 자기의 자존심이 세워질 때, 자기의 명예가 존중될 때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거짓 신앙이 되는 것이죠. 신분사회에서 비록 내 집의 종이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세운 그 권위 아래 순복하면서 조덕삼 장로는 한국 교회사와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아름다운 귀감이 되었습니다. 조덕삼의 신앙과 삶은 복음이 신분과 계급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복음을 삶 속에서 복음이 되게 한 실례가 된 거죠.



  그의 삶은 자체가 복음이 되었습니다. 금산교회 주변에, 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많은 사람이 와, 어떻게 이런 일이·····. 자기 집의 종을 교회에서 장로님, 장로님 하면서 섬길 수 있는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신분사회였음을 생각해야 해요.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도전을 받았을 것은 분명하잖아요. 저 사람들이 믿는 예수, 그 예수가 도대체 누구길래 저들이 믿는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뭐길래, 저들은 저렇게 살 수 있는가?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는 성경, 그 말씀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풍조, 세상의 가치 체계, 가치 기준, 그런 것은 성경적 가치 기준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우리의 삶은 다른 이들에게 메시지가 되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우리의 삶이 복음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함께 읽으면 좋을 성경도 소개할게요. 빌레몬서와 사도행전 61~6절 말씀을 읽어보시고 묵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유대인 기독교인과 헬라인 기독교인들의 다툼이 있어서 사도들이 성도들에게 일곱 집사를 선택하라고 하는데 인간적인 세력으로는 밀리는 헬라인 집사들이 더 많이 선출된 사건이에요.



 
목록으로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