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언어와 이해
교회에 3개월 전에 처음 왔고, 성경을 처음 접했던 나에게 모든 것이 새로웠다. 처음 왔을 때 라파에 계신 형제자매들이 중독이 은혜일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라파에 온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은혜는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알아간 것은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한 것에 대한 믿음이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목사님이 쓰신 아나뱁티스트의 내용 중 교회가 예배당이 아니고, 사람들이 교제하는 곳이라는 정의는 생소하지만 그럴듯하게 다가왔었다.
이번 주 일요예배에서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믿음", "은혜", "예배", "신자"와 같은 언어들이 오히려 신앙을 생생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으며, 굳어진 종교적 습관을 유지하는 형식화 도구로 전락했다는 말씀하셨다. 이를 들으면서 세상에서 생각했던 언어의 문제들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먼저 언어의 정의와 관련한 문제이다. 믿음, 은혜, 사랑 등의 용어는 추상적 언어로 이를 사용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이해와 의미가 같을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과학의 과학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과학은 검증가능성에 그 본질이 있는데 용어의 정의가 다르면 검증이 어렵고, 사회과학은 과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정의, 공정, 민주주의 등 정치 사회적 언어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아전인수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념적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만나 민주주의를 토론할 때 각각 이에 대한 개념과 의미가 다르면 대화는 챗바퀴를 돌고, 이는 혼란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혼란이 기독교에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성경의 번역과 관련한 단상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과학 관련 용어들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외국의 것을 번역하여 사용한다. 그래서 번역을 언제 누가 하였는가에 따라 이해의 어려움을 가져온다. 많은 사람들이 welfare 하면 복지를 떠올리고, 다수의 사회과학에서도 복지로 번역한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후생이라고 번역하였고, 이를 도입한 경제학계에서는 welfare economics를 후생경제학이라고 현재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의 결과에 많은 행정관청을 가보면 후생복지라는 중복어가 많이 보인다.
이는 성경의 번역에서도 많은 부분 느낄 수 있었다. 번역한 시대의 용어가 반영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역과 관련한 이해의 어려움이다. 최근 로마서를 읽고 있는데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그래서 영한성경을 찾아보았더니 영어성경과 한글성경에 미세한 차이들이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로마서 7장 첫 소제목이 “혼인관계로 비유한 율법과 죄”인데 영어 성경에서는 “Released from the Law, Bound to Christ(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에 속박되다)”와 “The Law and Sin(법과 죄)”의 두 개로 나누고 있었는데 영어 성경이 상대적으로 이해가 용이했던 것 같다. 8장의 2번째 소제목을 보면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고대하다”인데 영어로는 “Present Suffering and Future Glory(현재의 고통, 미래의 영광)”였고, 3번째 소제목의 경우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More than Conquerors(정복자 그 이상)”로 완전한 의역의 냄새가 났다.
9장이 가장 혼란스러웠는데 소제목의 체계 자체가 달랐다. 한글 성경의 경우 소제목이 “약속의 자녀 약속의 말씀”으로 1절부터 18절까지, 19절부터 29절까지는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이었고, 30-33은 “믿음에서 난 의”였다. 반면 영어성경은 1-5절이 “Paul’s Anguish over Israel(바울의 이스라엘을 향한 고뇌”, 6-29절이 “God’s Sovereign Choice(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30-33절은 “Israel’s Unbelief(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으로 한글 성경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이는 신자들에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의역이라고 생각되지만 성경 본래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사뮤엘하에 이어 로마서를 읽고 있는데 사뮤엘은 역사와 이름으로 어렵고, 로마서는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어려웠다. 성경을 처음 접하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면서 믿음의 성령이 저에게 내려주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