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이야기
목사님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으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제시하였다. 인간은 누구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자주성, 난관을 유익하게 바꾸는 창조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과 정신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반면에 인간은 자주적이고 독립성을 원하기도 하지만,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고자 하는 특성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가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이끌려가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를 새도매저키즘적 성격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인간 특성을 독재자들이 잘 활용하여 그들의 체제를 구조화하기도 한다.
목사님은 신앙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적 성질들이 “하나님 안에서”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며,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서려는 자주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 안에서 그 성질들이 온전히 성취된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일한 성질이라도 신앙 밖에서는 자기 완결적 자립으로 굳어지지만, 신앙 안에서는 관계적·소명적 자율성으로 변용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타락한 모습은 어디에서 드러나는가에 대하여 목사님은 선악 판단에 집착하는 경향을 핵심 증상으로 들고 있다. 인간은 자신을 ‘선’으로, 타인을 ‘악’으로 규정하는 주관적 잣대에 매이기 쉽고, 바로 그 판단이 공동체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셨다. 이는 현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으로 흑백논리가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특히 역사적으로 조선의 당파싸움에서 일제 독립운동, 해방 이후 남북분단의 상황, 민주화 투쟁 속에서 적과 아군을 분리하는 데 너무 익숙해졌고, 중간의 회색지대가 없이 사꾸라로 매도되곤 했다. 더욱이 2중의 잣대를 들이밀면서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으로 매도하곤 한다. 즉 선과 악의 구분이 자기 편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판단하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목사님이 의도적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않으려 애쓴다는 말씀이 가슴에 다가왔다. 선악을 스스로 알겠다는 욕망이 왜곡과 혼돈을 만들고 그 결과가 공동체적 불화로 나타난다는 진단이었다. 하나님이 선악 과를 금하신 뜻을 너무 타당하게 느낀다고 말씀하신 데 공감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바로 설 수 있는가에 대하여 목사님은 창세기 1장의 ‘빛’을 인간 실존과 연결하셨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내면은 혼돈·공허·어둠과 같고, 하나님의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 비추기 전에는 사물도, 진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식과 판단이 건강해지려면 말씀의 빛이 내면에 비추어야 하며, 그 빛 아래에서야 비로소 질서가 세워진다. 이 해석은 창조 서술의 질서가 인간 실존의 회복 원리이기도 하다는 통찰로 이어졌다.
이 과정은 개인의 결심만으로 완결되지 않으며, 인간 안의 “내 멋대로 하려는 마음”과 죄의 본성이 제어되려면, 성령님의 도우심과 공동체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함께하는 사람들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인간의 자주성·창조성·의식성은 하나님 뜻 안에서 바르게 쓰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틀 속에서 인간의 본성은 방종이 아니라 소명으로, 판단은 배제의 칼이 아니라 사랑의 분별로 전환될 수 있고 말씀을 마무리하셨다.